내용 흐름상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지의 제왕>,<호빗>을 연출한 피터잭슨이 제작하고 크리스찬 리버스가 감독을 맡은 <모털엔진>이 개봉한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소리소문없이 극장에서 사라져서 결국 VOD로 보게 됐네요. 피터잭슨의 명성에 비해 영화 자체는 흥행에도 실패하고, 평점도 7점대로 저조하지만,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천공의 성 라퓨타>, 헐리웃 영화 <매드맥스>, <스타워즈>를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영화로 저는 나름 재미있게 봤습니다. 원작은 필립 리브의 <견인도시 연대기> 시리즈 중 첫번째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세계 종말(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 문명이 파괴되고, 기계로 만든 이동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스팀펑크(증기, 기계가 발달한 가상의 미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고대인'들이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양자 무기 '메두사'를 사용해 세계가 멸망한 후, 지구 표면이 파괴되고 대륙의 형태가 사라지면서 인류는 정착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고철과 과거 건물들의 잔해를 이용해 만든 이동 도시(견인도시)에서 문명을 이루며 살아 가게 되었습니다. 영화 중에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2118년대의 것인데 천 년도 더 지난 음식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3000년 대 어느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것 같아요.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증기를 동력 삼아 움직이는 이동도시의 모습이 근사하고 멋집니다.
세계에는 이동하는 도시 가운데 런던, 독일 등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 견인도시와 광산 타운, 무역 타운 등의 소형 이동도시, 그리고 '반견인도시 연맹'처럼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 연합이 존재합니다. 그 외 <천공의 성 라퓨타>처럼 비행선을 거대화 한 공중 도시, 떠다니는 수상도시, 수상 감옥(샤크무어) 등 다양한 형태의 기계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소형 광산타운이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는 곳에 거대한 '런던 이동도시'가 찾아와 사냥을 시작하는 것으로 막을 엽니다. 영국 국기가 그려진 철옹성처럼 보이는 '런던 이동 도시'는 식량과 물자가 부족해 작은 타운들을 사냥하며 물건을 약탈하고 타운에 살던 사람들을 시민으로 흡수하며 덩치를 불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광산 타운이 소중한 식량을 버려가며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런던 이동 도시에 흡수되고 맙니다. '소화시킨다'는 표현을 쓰던데 마치 잡아먹는 것처럼 거대한 입구를 벌려 타운을 흡수하는 모습이 악랄한 포식자이자 제국주의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주인공 중 하나인 톰 내츠워디(로버트 시한)는 비행사가 꿈이었지만 부모님의 죽음으로 하층민의 삶을 살며 박물관에 공급하기 위한 고대 유물을 주워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가 어쩌면 주인공들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인데다 매력이 덜 해서 그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개성이 약하더라구요. 얼굴에 깊은 상처가 있는 여주인공, 헤스터 쇼(헤라 힐마)는 광산 타운에 있다가 런던 이동 도시에 흡수된 후 그곳의 실질적인 실세인 테데우스 발렌타인(휴고 위빙)을 '엄마의 원수'라며 다짜고짜 공격합니다.
도망치는 헤스터를 쫓던 톰마저 발렌타인에 의해 런던 이동 도시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고, 톰은 생전 처음 이동 도시 밖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톰은 어떻게 해서든 무역 타운을 통해 다시 고향인 런던 이동 도시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해적에게 쫓기고 노예상에게 팔려나가는 등 상상도 못할 고초를 겪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헤스터의 과거 사연을 알게 되고, 자신이 우상으로 알았던 테데우스 발렌타인에게 엄청난 비밀과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게다가 헤스터는 마치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강력한 사이보그 형태의 부활군이었던 '슈라이크'에게 쫓기며 상황은 점점 급박하게 흘러갑니다.
헤스터의 엄마와 인연이 있었던 '반견인도시 연맹'의 안나 팽에 의해 공중도시 '에어 헤이븐'에 가게 된 헤스터와 톰은 테데우스 발렌타인의 야심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모으게 되고, 샨 구오에 정착하고 있던 정착민들은 또 한 번 인류의 멸망을 건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헤스터의 엄마 판도라 쇼가 발견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헤스터와 톰, 그리고 안나 팽 일행은 마치 스타워즈에서 데스 스타를 향해 돌격하는 반군들처럼 목숨을 걸고 최후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얼핏 줄거리만 봐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과 스토리가 데자뷔같은 기시감을 심어주며 익숙하게 흘러갑니다. 앞서 말했듯 이동하는 타운도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실사판을 보는 듯 하고, 무법지대에 난무하는 해적들과 노예상들은 <매드맥스>의 세기말을 연상시킵니다. 안나팽이 타고 다니는 붉은 색의 '제니 하니버' 비행선은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왔던 돌라 할머니 가족의 비행선과 닮아 있고요, 그들이 모여 있던 공중 도시 '에어 헤이븐'도 라퓨타 외에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장면입니다.
헤스터를 쫓아다니는 사이보그 부활군 '슈라이크'는 터미네이터와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이성을 잃은 거대 로봇 같은 이미지를 풍깁니다. 그리고 런던 이동 도시가 작은 타운들과 정착 도시들을 공격할 때 아무 생각없이 환호성을 올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헝거게임>의 시민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반연맹의 공격은 스타워즈에서 데스스타를 향해 돌격하던 반군을 닮아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동도시들의 정교하고 개성있는 외관과 박진감 넘치는 움직임, 화려한 영상미와 속도감 있는 액션, 세계의 운명을 놓고 목숨을 거는 캐릭터들의 고군분투 성장기는 볼만했습니다. 21세기 문물을 '고대 유물'이라고 부르며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깨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미국의 상징으로 알려진 '노란색 동상' 장면이 깨알처럼 재미있습니다. 게다가 유통기한이 천 년이 지났는데도 '고대 음식은 썩지 않는다'며 천연덕스럽게 먹어대는 헤스터의 비꼬는 듯한 대사 또한 인상적입니다. 얼굴에 큰 상처가 있는데도 단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카리스마 넘치는 헤스터 역을 잘 소화한 헤라 힐마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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