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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이야기/드라마

[일드]중쇄를 찍자

by R&X 2019.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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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에 오래전부터 보고싶은 드라마로 <중쇄를 찍자>를 찜 해뒀었는데 왠지 끌리지 않아서 계속 방치해 두다가 요즘 사카구치 켄타로라는 배우에게 주목하면서 <중쇄를 찍자>까지 보게 됐습니다. 시즌1 10편 에피소드로 제작되었는데, 완결까지 단숨에 너무 몰입하면서 재미있게 봐서 왜 진작 보지 않았는지 무릎을 칠 정도였어요. 마츠다 나오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드라마는 초반 3권 정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더군요. 

'중쇄'란 출판물의 초판이 인쇄된 후 인기가 좋아서 증판하게 됐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중판출래'는 편집부도 작가도 독자도 모두 행복해지는 출판사의 최고 지상과제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인 쿠로사와 코코로는 원래 유도 국가대표였지만 시합에서 부상을 당해 더이상 선수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취업의 길로 접어듭니다. 여러군데서 떨어진 후 주간 코믹잡지사인 바이브스 편집부에 신입 편집자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코코로 특유의 밝고 건강한 분위기와 넘치는 열정으로 주변까지 환한 영향력을 끼치며 변화시켜가는 과정도 재미있고, 무엇보다 만화 편집부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만화작가를 꿈꾸거나 출판, 편집쪽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직업대리체험으로서의 즐거움도 선사하고 있습니다. 

매 에피소드마다 중견 만화가나 어시스턴트들, 만화가를 지망하는 수많은 도전자들의 삶과 희노애락이 현실감있게 드러나고, 만화잡지나 단행본이 나오기까지 숨은 곳에서 땀흘리는 편집부, 영업부, 출력소, 서점 현장에 있는 직원들의 고충까지 촘촘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만화 콘티를 그리는 법에서부터 펜작업, 먹작업, 지우개 작업, 편집담당자의 콘티 수정, 원고마감을 위해 밤을 지새우는 과정, 교열과 출력 작업들이 숨가쁘게 전개되고, 만화작가들의 고민과 좌절들이 마치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상세히 그려지고 있기 때문에 잘 몰랐던 만화 출판계에 직접 발을 들여놓은 듯한 생생한 대리체험이 가능합니다. 

열정 넘치는 신입사원인 코코로가 어엿한 편집 담당자가 되어 신입작가를 발굴하고 결국 '중판출래'라는 목표를 이루어내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열정을 다해 젊음을 바쳤던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해 괜시리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주인공 코코로 역을 맡은 쿠로키 하루는 2013년 신인상을 받은 후 201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기도 한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여배우로, 작품 속에 그대로 녹아들어가 드라마를 매력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고독한 미식가>시리즈로 잘 알려진 마츠시게 유타카가 편집부장역을, 사카구치 켄타로가 의욕도 없고 영혼도 없이 시간 때우기로 일하던 유령같은 존재였다가 코코로로 인해 점점 열정 넘치는 영업사원으로 바뀌어가는 코이즈미 준 역을 맡았습니다.

연기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오다기리 죠가 이성적이고 침착한 상사역을 맡아 코코로가 햇병아리 신입에서 어엿한 편집자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하는 부편집장 역을 맡아 극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머리를 틀어올려 묶고 대충대충 행동하는 것 같은데도 말하는 대사마다 삶의 지혜를 더해주는 명언들을 읊곤 합니다. 매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누구 하나 그냥 흘려보낼 사람 없이 모두가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로서 의미있게 존재합니다. 

바이브스 사장의 과거 에피소드 편도 감동적인데요, 평소에 술, 담배, 도박 등을 멀리하고 착한 일, 좋은 일을 꾸준히 함으로써 작은 운을 모아 '중판출래'라는 단 한 가지 소중하고 큰 목표를 위해 모든 운을 바치겠다는 생활 신조가 인상적입니다. 수십년 동안 연필과 펜으로 작업해온 중견 만화가의 방식과 와콤이나 타블렛 등으로 작업하는 신진 만화가들 사이의 세대차를 보는 것도 드라마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편집자들간, 작가와 담당자들간의 갈등과 이별도 존재하지만 모두가 합당하고 타당한 자신만의 이유와 신념을 갖고 움직이기에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하고 가치있는 이야기로서 깊은 감동과 교훈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다소 짧은 10편의 에피소드로 끝나기엔 너무나 아까운 배역과 스토리라 시즌2가 나오면 좋겠는데, <중쇄를 찍자>가 2016년에 제작된 작품이라 후속작품이 언제 만들어질지는 아직 미지수 입니다. 만화 원작도 재미있지만 비타민 같은 미소를 지닌 쿠로키 하루가 보여주는 무한긍정 에너지를 또 만나고 싶어서 시즌2가 꼭 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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