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01 - [영화&드라마 이야기/드라마] - [영드]미스마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 속 명탐정 '엘큘 포와로'의 추리 이야기를 담은 영국 드라마가 1989년 시즌 1을 시작으로 2013년 시즌 13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까지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데이비드 서쳇이 연기한 포와로는 소설 속 포와로 그 자체였습니다. 벨기에 출신 포와로는 프랑스어가 섞인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종종 프랑스인으로 오해를 받습니다. 항상 깨어있는 회색 뇌세포를 사용해 어려운 범죄를 밝혀내는 포와로의 추리는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할 뿐 아니라 결벽증에 가까운 꼼꼼함과 작은 것까지도 놓치지 않는 날카로움으로 미궁 속에 갇힌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줍니다.
벨기에 경찰 출신이었던 포와로는 내부 비리를 용납하지 못해 경찰직을 내려놓고 영국으로 건너 와 아마추어 탐정이 되었고, 살인이 있는 곳마다 나타나 어려운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항상 옷이나 모자가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포크와 나이프가 흐트러져서는 안되는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 성향,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신사로서 손색이 없는 복장을 유지하는 포와로는 꼿꼿한 성격만큼이나 범죄에 있어서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정의롭고 대쪽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료인 헤이스팅스 대령과 함께 다니며, 사무실에서는 미스 레몬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뢰를 받습니다.
포와로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사건은 복잡하고 잔인한 사건이 아니라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할 때입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요. 눈밭을 달리던 기차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눈사태에 막혀 고립된 상황에서 그 곳에 있는 범인을 밝혀나가던 포와로는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살해당한 피해자가 예전에 어린아이를 납치해 죽인 잔혹한 범죄자였으며, 그의 죽음이 그 아이와 관련된 사람에 의한 복수극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정의는 실현되어야 한다는 포와로의 신념과, 항상 미꾸라지처럼 법망을 빠져나가던 사악한 범죄자의 죽음 때문에 앞으로 선량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교수형에 처하게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죠.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도 종종 그런 경우에 맞닥뜨렸지만, 홈즈는 "나는 경찰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인지상정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던 범인을 놓아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단서는 그대로 남겨둬서 경찰이 스스로 범인을 찾아낼 기회는 주었지만 말입니다.
포와로는 적어도 두 번은 정의는 언제든 "법대로" 올바르게 실현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예외를 둔 행위를 감행합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때 그는 결국 범인을 경찰에 넘기지 않고 침묵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시즌 13 마지막 회에서는 지금까지의 포와로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하고 눈을 감습니다. 그가 오래된 친구 헤이스팅스에게 편지를 써놓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비밀이 적혀 있었죠. 오랜 세월동안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악행을 저지른 범인을 색출해내던 명석한 회색세포를 가진 명탐정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지겠다고 하며 법을 초월한 정의를 실현하고 떠났습니다. 시즌 1에서 자신감에 가득찬 혈기왕성한 중년의 모습에서 시작해, 해를 거듭할수록 머리와 수염이 희끗해지고 꼿꼿하고 빠르던 걸음걸이가 흐트러지며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인 노탐정이 된 포와로는 휠체어에 의지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동자만큼은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탐정의 최후를 보여준 드라마는 아마 포와로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즌 13까지 포와로가 겪은 수많은 모험들을 함께 한 시청자들은 대장정의 막이 내린 순간 아쉬움보다는 그가 이뤄낸 엄청난 업적에 숙연함을 느끼게 됩니다. 비록 소설 속,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여진 포와로의 발자취는 실제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이제 데이비드 서쳇이 아닌 포와로는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지요. 케네스 브레넌이 포와로를 열연했던 영화판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2017>을 봤을 때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거꾸로 데이비스 서쳇이 다른 역으로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되면 자꾸 포와로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포와로를 그렇게 완벽하게 연기한 명배우이니, 다른 역을 맡아도 완전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할 거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말입니다. 그만큼 포와로는 강렬한 캐릭터였다는 걸 강조하고 싶네요.
포와로 시리즈는 왓챠와 웨이브에서 시즌 7-13까지 볼 수 있고 최근 웨이브(wavve)에서 시즌 1,2가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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