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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이야기/애니

[애니]십이국기 - 오노 후유미

by R&X 2019.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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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강력하게 포함된 리뷰입니다. 

<십이국기>는 꽤 오래 전 발매된 소설이자 동명의 애니메이션으로 아직 완결이 되지 않은 중국풍 판타지 대하서사 드라마입니다. 애니메이션으로는 45편까지 제작되었는데, 이세계 판타지물이긴 하지만 엘프나 드워프 등이 나오는 서양식 판타지가 아니라 기린이나 신선 등이 등장하는 중국풍 시대극에 더 가깝습니다. 나카지마 요코라는 주인공은 우등생이긴 하지만 늘 남의 눈치를 살피며 자기 주장이 약한 캐릭터로 초반에는 답답하고 소극적으로 그려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교에 등장한 금발의 남성이 요코에게 무릎을 꿇으며 충성 서약을 하고, 동시에 고조라는 괴물새가 요코가 있는 학교를 공격하면서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에 요코는 사건에 휘말린 학교 친구 유카, 아사노와 함께 바다 너머 이세계에 떨어지게 됩니다. 

전생을 하거나 이세계로 흘러 들어가는 작품들은 많이 있지만 십이국기는 다른 이세계물과 달리 주인공들에게 아주 가혹한 환경이 주어진데다, 별다른 치트(능력)도 없어서 영문도 모르고 이세계로 오게 된 요코와 유카, 아사노는 그야말로 모진 고생을 하게 됩니다. 유카나 아사노의 경우는 이세계에 온 후 말이 통하지 않아 곤란을 겪게 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요코만이 얼굴과 골격이 바뀌고 언어도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요코 일행이 흘러들어온 곳은 여신과 기린의 거처인 '봉산'을 중심으로 12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봉산을 둘러싸고 있는 8국이 범, 공, 류, 안, 경, 교, 주, 재나라이고, 바깥쪽에 4국인 순, 연, 방, 대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십이국은 한번 세계가 멸망한 후 신의 섭리에 따라 재창조된 나라로, 천제가 왕을 선택하면 하늘의 뜻이 '기린'이라는 영물에게 전달돼 기린이 왕을 선택하게 되고, 왕은 선적에 들어 불로장생의 존재가 됩니다.(무병장수의 의미의 불로장생이며, 목이 잘리거나 도를 잃어 기린이 먼저 죽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 왕도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아이를 잉태하거나 출산하지 않으며 나라에서 하사받은 토지에서 함께 사는 부부가 '리목'이라는 나무에 소원을 빌면 리목에서 열매(난과)가 열리게 되고 이를 따와 아기를 얻게 됩니다. 기린 또한 봉산의 리목에서 자란 열매에서 태어나며 기린의 열매가 열리면 이에 앞서 온갖 짐승이 결합되어 있는 괴이한 모습의 '여괴'가 탄생해 평생동안 기린을 모시게 됩니다. 리목의 열매 중에는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반수'가 태어나기도 하는데,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가끔 요코네가 십이국에 올 때처럼 태풍과 같은 '식'이 일어나면 리목에 열렸던 열매가 일본(여기서는 '봉래'라고 부름)으로 흘러나가기도 하는데 이를 '태과'라고 부릅니다. 

기린은 요마를 복종시켜 '사령'으로 부릴 수 있으며, 사령은 기린이 죽을 때까지 충성하다가 기린이 죽으면 그 시체를 먹고 힘을 얻는 계약을 하게 됩니다. 기린은 원래 뿔이 달린 유니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성인이 되면 사람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신성한 영물이라 피를 보면 힘이 약해집니다. 각각의 나라에는 한 명의 왕과 기린이 존재하며, 남성형 기린은 기, 여성형 기린은 린이라고 불립니다. 안국의 남성형 기린을 엔키, 교의 여성형 기린을 코우린이라고 부르는 식입니다. 기린은 평생 왕의 곁에서 보필하는 존재지만, 만일 왕이 하늘의 도를 잃고 망국의 길을 걷게 되면 기린은 실도의 병을 앓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기린이 죽으면 왕은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되지만 왕이 먼저 죽을 경우 기린은 다음 왕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요코를 십이국으로 데려온 금발의 남성은 '경'이라는 나라의 '기린'으로 '케이키'라고 불립니다. 요코는 기린인 케이키의 선택을 받은 경의 신왕으로 본래라면 요코를 경으로 데려가야 했지만 '교'국의 기린과 기린이 부리는 요마인 사령의 공격을 받아 뿔이 봉인되어 케이키는 어딘가에 유폐되어 버리고, 영문도 모르고 십이국에 오게 된 요코는 한~참 후 다시 케이키를 만날 때까지 온갖 고생을 하며 가혹한 시련을 겪게 됩니다.  

요코일행이 십이국에 올 때처럼 식이 일어나 흘러들어온 봉래(일본)인을 '해객'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말이 통하지 않고 식이 일어나면 대부분 커다란 태풍이 일어나 마을에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배척받는 존재였습니다. 다만 봉래로 흘러갔다가 다시 십이국으로 오게 된 태과 출신의 왕과 기린이 있는 '안'처럼 해객과 반수를 박해하지 않고 품어주는 나라도 있었습니다. 요코네가 처음 도착한 곳은 '교'국으로 이곳은 특히 해객과 반수에 대한 박해가 심하고, 특히 태과 출신 왕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각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각왕'은 태과 출신이면서 500년동안 풍요로운 나라를 이끌어온 안국을 질투해 왔고, 곧이어 인접국인 경국에도 태과출신 왕이 즉위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코우린과 사령을 시켜 요코를 집요하게 죽이려 합니다. 영문도 모르고 요마에게 쫓기게 된 요코는 십이국에 오기 직전 케이키의 명령으로 사령인 '죠유우'가 몸에 깃들어 있는 상태라 자기도 모르게 요마를 퇴치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속아 팔려갈 위기에 처하거나 요마의 공격을 당해 상처를 입으면서 불신감에 사로잡히게 된 요코는 아무도 믿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 와중에 아사노와도 사고로 헤어지게 되고, 유카는 교국의 각왕에게 속아 요코의 적이 되고 맙니다. 요코가 굶주림과 피곤에 지쳐 쓰러졌을 때 커다란 쥐의 모습을 한 반수인 '라크슌'이 요코를 구해줍니다. 처음에 요코는 라크슌을 경계하고 믿지 못했지만, 태과 출신의 왕과 기린이 있다는 '안'에 함께 동행하게 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둘은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이 됩니다. 

결국 요코는 자신이 기린에게 선택된 태과 출신의 경국의 여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안국의 왕과 라크슌의 설득으로 왕의 자리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1화~13화 정도까지가 요코가 경왕으로 즉위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나오고, 14화부터 20화 정도까지 태과 출신인 대국의 기린 '타이키'의 이야기가 다뤄집니다. 그리고 20화부터 40화 정도까지 방국 공주 '쇼케이'와 해객출신이면서 모진 고생을 하다 선인이 된 재국 파산 취미봉의 하녀인 '스즈(모크린)' 이야기와 함께 경왕인 요코가 신분을 숨기고 지방으로 내려가 탐관오리들을 제압하는 이야기가 다뤄집니다. 쇼케이와 스즈 이야기는 고구마 한 상자를 먹은 것과 같은 답답함을 선사해 주기도 하는데, 둘 다 불행한 사건을 겪으며 자기 연민에 빠져 비슷한 연령대의 경왕에 대한 허황된 동경이나 증오심을 품은 두 소녀가 경국의 민간 봉기에 가담하게 되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요코 또한 무기력하고 남의 눈치만 살피던 과거에서 벗어나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면서 쇼케이, 스즈를 만나게 되고 나라 곳곳의 사정에 눈을 뜨며 충신을 발굴해 조정의 기강을 세우는 과정이 상세히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45편까지는 안국 연왕의 과거 이야기가 다뤄지며 일단락됩니다. 초반에 그려진 대국의 기린인 '타이키'의 이야기가 미스터리로 남은 채 애니가 끝나기 때문에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소설의 뒷편이 이제야 조금씩 나오고 있는 중이라 애니로는 후반부 이야기가 언제 제작될 지 기약이 없습니다. 

십이국기의 세계관과 스토리 전개는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사실 요코와 라크슌의 찰떡궁합 케미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캐릭터간의 관계가 아주 답답하고 지지부진한 면이 많아 인내심이 좀 필요합니다. 경국의 기린인 '케이키'의 경우 아주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데다 항상 말이 부족하고 말투가 차가워서 요코는 영문도 모른 채 십이국에 끌려오고 거기다 케이키가 교국 각왕의 음모로 경을 지배하고 있던 '위왕(가짜 왕)'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요코는 자신이 왕이라는 것도 모르고 갖은 고생을 겪게 됩니다. 힘들게 왕이 된 후에도 십이국과 경국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요코가 제대로 국정수행을 해내지 못하자 한숨만 푹푹 쉬면서 제대로 된 설명도 못해줍니다. 태과 출신 기린인 타이키가 봉산으로 돌아왔을 때도 케이키가 타이키의 교육을 잠시 맡게 되었는데 역시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못해 타이키만 마음 고생을 엄청 하게 됩니다. 

해객출신 선인인 스즈 또한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 재국 선인인 취미봉의 하녀로 들어가 무려 100년 간이나 모진 고초를 겪게 되는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원망과 자기 연민에 빠져 한동안 아주 답답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방국의 공주인 쇼케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왕인 예왕이 너무나 원칙적이고 엄격해 60만의 백성들을 사소한 죄목으로 처형하며 폭정을 하게 되자 결국엔 부하들이 모반을 일으켜 왕을 처단하게 되는데 왕궁에서 추방된 쇼케이 또한 공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은 없이 자신의 불행에만 집착해 점점 궁지에 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행히 둘은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주변 상황과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면서 점차 경왕인 요코의 힘이 되는 동료로서 훌륭히 성장하게 되지만 꽤나 오랫동안 두 사람의 질질 짜는 모습을 봐야 하기 때문에 한번 정주행을 한 뒤에는 그 부분은 건너뛰기로 보게 되더라구요. 

기린과 왕의 관계나 특성도 나라마다 다 다른데, 애니에서는 12국 중에서 주로 경, 안, 교, 대국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방국과 재, 연, 공, 류국이 잠깐 잠깐 스치듯 다뤄졌습니다. 경의 경우는 이미 한 번 자신이 선택한 여왕을 잃고 다시 태과 출신 요코를 왕으로 선택한 케이키가 있고, 안은 둘 다 태과출신인 엔키와 연왕이 500년 간의 치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국은 50년간 통치하던 각왕이 경국 신왕인 요코를 죽이려다 실도해 왕이 죽는 상황이 되고, 대국은 태과 출신 타이키가 왕을 선택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를 이유로 타이키는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봉래로 돌아가게 되고 역시 대국은 왕과 기린이 없어 황폐해 집니다.

방국은 부하들의 모반으로 예왕이 죽고 아직 왕과 기린이 봉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후 겟케이가 임시로 통치를 하게 됩니다. 재국은 할머니 여왕이 다스리는 곳으로 파산 취미봉에게 학대받던 스즈를 구해준 여왕입니다. 연국은 나오지 않았지만 타이키를 봉래에서 봉산으로 불러들일 때 연의 기린이 잠깐 등장합니다. 공국은 방국 공주인 쇼케이가 국가에서 추방됐을 때 잠시 거둬준 어린 여왕으로 당돌하고 당찬 여왕인데다 자신의 기린을 험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류국은 왕이나 기린은 나오지 않았지만, 쇼케이와 라크슌이 잠깐 들렀을 때 곳곳에서 부패의 징후가 보이는 나라로 묘사됩니다. 

아마 소설의 뒷편에서 타이키의 이야기와 함께 나머지 12국의 이야기도 좀더 자세히 다뤄질 거라 생각되는데 소설로 읽기 보다는 애니로 후속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암튼 소장하고 싶은 애니 중 하나인 십이국기는 방대한 스케일과 개성넘치는 인물들, 처절할 정도로 현실적인 묘사와 판타지, 미스터리까지 어우러져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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