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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이야기/애니

[애니]피아노 관련 애니 - 피아노의 숲, 4월은 너의 거짓말, 언덕길의 아폴론

by R&X 2019.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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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상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최근 왓챠를 통해 피아노와 관련된 음악 애니를 몇 편 보게되었습니다. <피아노의 숲>, <4월은 너의 거짓말>, <언덕길의 아폴론> 등인데요, 모두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잇시키 마코토의 만화가 원작인 <피아노의 숲>은 2007년 애니로 제작되었는데요, 애니 내용은 만화책 초반 6권 정도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고 원작은 26권으로 완결됐습니다.

할머니의 병 때문에 도쿄에서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 아마미야 슈헤이는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고 있는 초등학생입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이치노세 카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되는데, 가난하고 천방지축처럼 보이는 카이였지만, 슈헤이는 카이가 데리고 간 숲에서 버려진 피아노를 치는 카이를 보고 경이로운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고장난 피아노라 슈헤이로서는 도저히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카이의 손길이 닿자 아름다운 선율이 연주되었던 것입니다.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카이였지만, 어릴 때부터 숲 속의 피아노를 놀이터 삼아 지내오면서 한 번 들은 음악을 바로 연주할 수 있는 천부적인 소질과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니스트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힘든 레슨을 받아오며 실력을 쌓아온 슈헤이에게 피아노는 반복된 훈련과 노력의 산물이었지만 카이에게는 그저 즐거운 손가락 유희이며 재미있는 놀이일 뿐이었습니다.

슈헤이는 과거 일류 피아니스트였지만 교통사고로 손을 다쳐 은퇴를 하고 초등학생 음악교사를 하고 있던 아지노 소스케의 제자가 되고 싶어했지만, 정작 아지노가 제자로 삼은 것은 피아노를 배워본 적도 없는 이치노세 카이였습니다. 충분히 질투하거나 시기할만한데도 슈헤이는 카이가 걸핏하면 싸우면서 손을 함부로 쓰는 것을 보고 말리며 보호해주기도 하고, 피아노가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서 피아노에 관심을 갖게 하는 등 아주 의젓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쇼팽의 곡을 치고 싶어서 임시로 아지노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된 카이는 몇 날 며칠 손가락 변주곡 연습만 하면서 지루해 어쩔 줄 몰라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에 손가락이 날개를 단 것처럼 건반 위를 날아다니게 되고 쇼팽의 곡을 멋지게 연주하는데 성공합니다. 감사의 의미로 아지노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한 카이는 전국 콩쿨대회에 나가라는 제안을 받게 되고, 처음으로 콩쿨 무대에 서게 됩니다. 

콩쿨에 참가한 슈헤이의 깨끗하고 정확한 선율에 모두가 환호하지만, 슈헤이는 카이의 연주가 더 신경쓰입니다. 피아노 앞에 선 카이는 처음엔 정석대로 연주를 하지만 그 곡이 자신에게 납득이 되지 않자 연주를 중단해 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카이의 연주는 악보의 지시대로가 아닌 카이 자신의 마음이 담긴 선율을 쏟아내며 무아지경으로 피아노를 두드립니다. 관객들의 환호가 쏟아지지만 콩쿨에서는 당연히 낙방을 하게 됩니다.

다들 슈헤이가 1등이라며 흥분하지만 정작 슈헤이 자신은 카이에게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눈물을 짓습니다. 카이 또한 자신이 처음 내딛은 세계에서 거부당한 느낌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지만 슈헤이가 전국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를 진심으로 빌어줍니다. 다시 도쿄로 돌아가게 된 슈헤이는 카이와 만남으로써 더이상 피아노가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사명이 아니라 즐겁고 사랑스러운 대상이라는 걸 알게 되고, 숲 속에서 울려퍼지는 카이의 연주를 들으며 마을에서 멀어져 갑니다. 애니는 여기까지였지만, 만화 원작에서는 카이와 슈헤이가 솔리스트 콩쿨에 나가게 되는 성장기와, 쇼팽국제 콩쿨에 도전하는 모습을 굵직하게 그려나갑니다. 

후천적인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이 만나 누가 더 잘하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라 라이벌의 존재로 인해 동기부여를 받고 한층 성장해 가면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가는 어린 음악가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선율이 가슴 깊은 곳을 잔잔하게 울려줍니다. 만화책으로만 봐도 강렬한 음악이 지면을 뚫고나와 귓가에 울려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표현된 작품인데, 애니로 보면 피아노가 이렇게 아름다운 악기였던가를 새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황홀한 음악을 접할 수 있습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 또한 아라카와 나오시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만화의 표현 또한 훌륭하지만 이 작품만큼은 꼭 애니로 보시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음악과 어우러진 영상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환상적입니다. 각종 콩쿨 대회 대상을 휩쓸던 피아노 신동 아리마 코세이는 자신의 피아노 선생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일종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연주를 하고 싶어도 어느 순간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서 마치 깊고 어두운 심연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게 되어 연주를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콩쿨 규정에 최적화 되도록 훈련받은 코세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깨끗하고 정확한 연주로 '인간 메트로놈'이라는 야유와 질시를 받아야 했고, 시한부 투병을 하고 있던 어머니는 학대에 가까운 매서운 레슨으로 아들을 몰아붙이기만 해 코세이는 오로지 자신의 모든 시간을 피아노에만 매달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피아노를 멀리하면서도 결코 떨어질 수 없었고, 어머니와 연결된 단 하나의 끈이었음에도 피아노를 볼 때마다 고통스럽고 괴로워 외면할 수밖에 없어 방황하던 코세이 앞에 햇살처럼 밝고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 있는 아름다운 소녀가 나타납니다. 코세이의 소꿉친구인 와타리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이름은 미야노조 카오리,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얼떨결에 카오리의 바이올린 콩쿨을 보게 된 코세이는 악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담아 자유롭고 파격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카오리의 박력에 압도당합니다.

카오리는 코세이에게 자신의 바이올린 반주를 맡아달라고 끈질지게 부탁해오고, 평소 과격하고 말괄량이같던 카오리가 바이올린에 대해서만은 어딘지 모르게 절박하고 간절해 보여 코세이는 카오리의 청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용기를 내 카오리와 함께 무대에 섰지만 연주 중간에 트라우마가 발동해 코세이는 결국 연주를 중단하게 됩니다. 하지만 코세이를 믿고 바이올린을 든 채 기다리고 있는 카오리를 본 코세이는 오직 카오리의 호흡에 맞춰 피아노를 끝까지 연주하는데 성공합니다.

카오리의 손에 이끌려 피아노 솔리스트 콩쿨에까지 나가게 된 코세이는 어머니의 피아노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에는 결코 깨닫지 못했던 주변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피아노 연주 안에는 동경하는 마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 자신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사랑과 희망 등 갖가지 감정과 마음들이 녹아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슬프고 가슴아픈 결말을 맞이해야 하지만 카오리로 인해 빛을 받아들인 코세이의 세상은 어둡고 침침하던 모노톤에서 점점 다채롭고 컬러풀한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코세이의 음악 또한 아름다운 총천연색의 빛깔로 물들어 갑니다. 강렬하고 전율이 느껴지는 피아노 선율만큼이나 눈 앞에서 펼쳐지는 몽환적이고 아련한 느낌의 영상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영화로도 제작이 됐습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왔던 히로세 스즈가 카오리역을, <히로인 실격> 등에 나왔던 야마자키 켄토가 코세이 역을 맡았습니다. 영화로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애니의 감동을 얼마나 살렸을지 궁금하긴 하네요. 

<언덕길의 아폴론>은 코마다 유키의 원작만화인데 동명의 TV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재즈 음악과 관련한 애니인데, 주인공 카오루와 센타로의 피아노와 드럼 합주가 가슴이 뛸 정도로 흥이 나고 감미롭습니다. 

시대 배경이 1966년이라 올드하고 신파극 분위기가 좀 풍기지만 그래서 더더욱 재즈의 향기가 짙게 배여있는 작품입니다. 낯선 환경에 대한 극도로 예민한 공포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전학생 카오루가 학교의 유명한 문제아인 센타로와 그의 소꿉친구 리츠코를 만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재즈 음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 카오루 역은 치넨 유리, 리츠코 역에 고마츠 나나, 센타로 역에 나카가와 타이시가 열연하는데, 원작이나 애니의 이미지와 싱크로율이 높아서 영화도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다혈질의 센타로가 리츠코의 레코드 가게 지하실에서 재즈 드럼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 카오루는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낍니다. 클래식 연주만 해오고 그마저도 친척 집에 얹혀 살면서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카오루지만 센타로의 연주를 듣고 난 후 재즈음악에 빠져들게 됩니다.

센타로의 외로운 인생도, 카오루의 짓눌린 마음도, 리츠코의 사랑의 향방도 모두 제각각으로 복잡하고 배배 꼬였지만, 피아노 건반 위에서 펼쳐지는 자유로운 손가락 유희와 재즈 드럼의 흥겨운 박자 속에 모든 것을 거둔 채 그저 혼신의 연주와 하나된 마음만 남습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 센타로의 그림자를 가슴에 품고 아픈 이별과 실연을 경험한 리츠코와 카오루 또한 저마다의 인생을 찾아 어른이 되어갑니다. 카오루는 병원에서 환자 아이들에게 피아노 연주를 해주는 다정다감한 의사가 되어 있었고, 우연히 병원을 찾은 지인의 사진 속에서 센타로를 발견합니다.

센타로가 있는 곳으로 향한 그곳에서 리츠코와도 재회하게 된 카오루는 마치 운명처럼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센타로 또한 드럼 스틱을 손에 들죠. 그리고 울려퍼지는 카오루와 센타로의 협주가 영화의 여운을 길게 남기며 아름답게 울려퍼집니다.  스토리상으로는 뻔하고 지루한 전개지만 재즈가 들려주는 음악 속에는 우리네들의 천태만상 희로애락의 삶이 진하게 녹아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겨울을 코 앞에 둔 깊어가는 가을 밤, 음악이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빠져들고 싶다면 위 세 편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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