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흐름상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음 웹툰과 리디북스에서 연재하고 있는 중국 웹툰 '은산몽담'을 우연히 접하고 99화까지 단숨에 보게 됐습니다. 1~6화까지는 무료로 감상할 수 있더라구요. 99화까지 나왔는데 아직 완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림체가 마치 실제 풍경이나 인물 사진을 트레이싱해서 그 위에 그린 것처럼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표현됐습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을 엄청 공들여 그렸는데요, 전체적으로 여성 캐릭터는 좀 대충 그리는 반면, 주인공과 남성 캐릭터는 에너지를 집중해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에 대한 별도의 설명없이 'Forget (법길특) 글, Phxjoy 그림'이라고만 언급돼 있습니다. 61화쯤 가면 시즌 1을 마무리하고 외전 겸 작가의 변이 잠깐 나오는데, 자신의 작품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녀앙고>, <엘사의 숲>, <바람의 추억>, <TIME>, <은산몽담> 등 꽤 많은 작품을 언급하고 있는데, 대부분 서양 캐릭터들이 주인공이고, <은산몽담>만 중국 고전풍 판타지물로 제작된 것 같습니다.
<은산몽담>은 한적한 산 속에 있는 어느 정자에서 한 여인이 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곳에 원숭이 가면을 쓴 신비로운 남자가 비를 피하러 들어오게 되고,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덜기 위해 '꽃미남'이 나오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줍니다.
'광군'이라 불리는 작은 나라가 배경입니다. 돌궐, 당나라, 신라 등의 나라가 존재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황제가 총애하는 공주인 '율희'는 시녀들과 함께 길거리에 놀러 나갔다가 한 남자와 마주치게 됩니다. 얼핏 본 것만으로도 그의 외모가 너무나 아름답고 출중해 율희는 한 눈에 반하고 맙니다.
그는 오래 전 나라에 죄를 지은 선조를 둔 가난한 주씨 일가의 자제인 '주우림'('강'이라고도 불림)이라는 청년이었습니다. 190 정도의 건장한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비단결같은 머릿결, 여자들도 따라오지 못할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강'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공주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황제의 허락을 얻어 주씨 가문에 관직을 내리고 주우림을 '부마'(공주의 남편)로 맞이하게 됩니다. 가문의 부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마'가 된 '강'이는 할머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가족들을 위해 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밝고 명랑하지만 궁에서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자란 철없는 공주는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지 몰라서 강이의 외모를 꾸미는 데만 집착을 하게 됩니다. 날마다 비싼 장신구와 옷감으로 강이를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꾸며서 신분을 숨기고 저잣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는 게 일과가 되었을 정도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지 않는 강이는 항상 우울하고 어두운 얼굴로 말없이 공주가 시키는대로 따르지만, 거의 80화에 이르기까지 잔뜩 찌푸리고 음울한 표정으로 일관합니다.
잘 생긴 얼굴을 보는 것도 한 두번이지 딱히 대화도 없고 공주와의 로맨스도 없고 언제나 슬픈 얼굴로 인형처럼 존재하는 강이의 모습이 너무 길~게 유지되니 나중엔 좀 지치더라구요. 게다가 너무나 그림이 섬세하고 정성이 가득해서 그런지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속도가 느리고 지지부진해서 시즌 1,2가 마무리 될 때까지 아직도 이야기의 초반부에 머무르고 있어 답답하기도 합니다.
강이와 율희의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황제와 태자, 왕자들의 주변 이야기, 과거 이야기가 교차되어서 나오기 때문에 짤막짤막한 웹툰으로 그 방만하고 장대한 이야기들을 한편씩 넘겨보려면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매화마다 표지는 좀더 실사에 가깝게 그렸지만 본문은 그보다는 좀더 만화에 가깝게 그려졌습니다. 마치 실제 인물이 존재하고 그 위에 만화 기법을 얹은 것 같은 그림체라 게임 3D 화면이나 애니메이션 컷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율희 공주와 강이의 관계가 좀처럼 진전이 없다가 후반부에 이르러서 조금씩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복잡한 국가 주변의 정세나 권력다툼 이야기도 얽혀 점점 굵직한 서사가 전개됩니다.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원숭이 가면의 남자나, 그 이야기를 듣는 묘령의 여인의 정체도 예사롭지 않은 것 같고, 무엇보다 강이의 정체와 할머니와의 관계가 궁금한데 그 이야기를 들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먼 것 같아요.
첫화를 보면 원숭이 가면의 남자가 요괴 이야기를 꺼내고 있어서 판타지물인 줄 알았는데, 언뜻 언뜻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언급이 있긴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황은 드러난 게 없습니다. 화려한 그림체 덕분에 눈은 호강하지만, 강이의 수려한 외모 감상을 제외하고는 아직 뚜렷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캐릭터도 없고 이야기도, 인물도 흥미 탐색 단계에 머물러 있어 중반부를 지나면서 점점 집중도가 떨어지게 되더라구요.
80화 전후로 강이의 새로운 표정도 볼 수 있고, 처음에는 정말 어이없는 루저같던 4황자 하강태가 조금씩 인간적으로 느껴지는데다, 돌궐족과의 세력다툼 이야기가 본격화되는 것 같아 이야기가 슬슬 재미있어 질 즈음 더이상 업데이트 된 작품이 없더라구요. 한편씩 보면 너무 이야기가 찔끔찔끔 전개될 것 같아서 한동안 손을 놓았다가 한 50~100편쯤이 추가됐을 때 다시 구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모든 작품이 흑백으로 되어 있지만 이후에는 컬러판으로도 서비스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음웹툰과 리디북스에서 대여 및 구매(회 당 200~400원)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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