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상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날 공주가 되어 버렸다>는 플루토스의 소설 원작을 스푼 작가가 웹툰으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은 본편 5권에 외전 1편으로 완결되었고, 웹툰은 원작 소설의 4권 초반 분량으로 66화까지 나와 있습니다. 리디북스에서 대여 및 구매로 볼 수 있어요. 웹툰은 소설과는 살짝 내용이 다르게 구성됐는데,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소설보다 웹툰쪽이 더 완성도가 높아 보입니다. 소설은 너무 인터넷 소설 문체로 되어 있어서 마치 10대 소녀가 쓴 망상일기같은 느낌이 좀 들고 '으헝헝, 크헝, 으헉, 지X' 같은 의성어와 비속어를 남발해 캐릭터의 감정선이나 스토리에 몰입하는데 무척 방해가 되더라구요.
웹툰은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 스푼 작가가 각색 및 그림을 맡고 있는데 그림체가 워낙 예쁘고 섬세해서 소설 속 인물을 더 아름답게 돋보이게 해주는데다, 다소 엉성한 스토리를 극적이고 화려한 연출로 포장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고아이면서 가난했던 주인공이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가 운명을 달리하고, 동시에 로맨스 소설 속으로 들어가 공주로 태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되는 <회귀물> 혹은 <타임슬립> 장르의 판타지 로맨스물입니다.
원래 주인공이 읽던 소설 속에서 황제 '클로드'는 외동딸인 아타나시아는 냉궁에 가둬 홀대하고, 전 약혼녀의 딸인 제니트 공주는 곁에 두고 총애를 합니다. 아타나시아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냉혹하고 비정한 황제는 자신의 친딸을 모질게 대하다가 결국 18세 생일에 아타나시아를 죽이게 되죠. 이런 결말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자신이 소설 속 아타나시아로 다시 환생한 것에 대해 아연실색하게 되고, 어떻게 해서든 황제의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18살이 되면 몰래 도망칠 궁리를 모색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 전개와는 달리 아타나시아는 5살이 되던 해 우연히 황제의 거처인 가넷궁에 들어갔다가 황제와 조우하게 됩니다. 아타나시아의 존재를 잊고 살던 황제는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딸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와 둘만의 오찬 시간을 가집니다. 아타나시아는 살아남기 위해 클로드에게 갖은 애교와 귀여움을 발산하는데, 클로드는 별 반응을 하지 않으면서도 소설과는 다르게 아타나시아를 죽일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호수에 빠진 딸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꿈쩍도 않던 냉혹한 눈동자에 몸서리치던 아타나시아지만, 황제와의 오찬이 거듭될수록 클로드와의 거리가 서서히 좁혀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아타나시아 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사 '루카스'가 나타나고, 아타나시아의 마력을 흡수한 신수 '까망이'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아타나시아는 자신에게 마법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느 날처럼 황제와 오찬을 즐기던 아타나시아는 갑자기 심장이 쿵쿵 거리는 걸 느꼈고, 그 순간 입에서 울컥하고 피를 토합니다. 극렬한 통증의 원인이 몸 속의 마력이 폭주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마법사 루카스가 아타나시아를 구해줍니다.
마력 폭주 사건 이후 비록 클로드가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아타나시아의 관계도 이전과는 달리 눈에 띄게 친밀해져 갑니다. 아타나시아의 데뷔탕트(상류사회에 데뷔하는 첫 무도회)도 무사히 치르고, 귀족 영애들과 모임도 가지며 아타나시아의 인생은 소설과는 달리 행복하게 흘러갈 것처럼 보이던 찰나, 제니트가 선물한 리본을 달고 다과회를 갖던 중 아타나시아의 마력이 또다시 폭주를 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마법사 루카스마저 세계수를 찾으러 떠난 참이라 아타나시아를 도와줄 수가 없었습니다.
아타나시아의 마력폭주를 막기 위해 클로드가 뛰어들었지만 큰 내상을 입고 쓰러지게 되고, 열흘 뒤 정신이 들었지만 막장 드라마처럼 클로드가 모든 기억을 잃고 외동딸인 아타나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후 아타나시아의 운명은 소설처럼 비극으로 흘러가게 되고, 아타나시아는 자신을 죽이려는 아빠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녕'이라는 작별의 말을 남긴 채 순간이동 마법을 써 자취를 감춥니다.
아타나시아가 궁을 비운 동안 제니트가 황제와 만나 소설의 원래 내용처럼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듯한 상황이 이어지고, 아타나시아의 운명은 시시각각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웹툰은 소설의 4권 앞부분 분량인 66화까지 소개되었고 현재는 정기휴재 중입니다.
뒷부분이 궁금해서 4, 5권(완결)은 소설로 봤는데, 내용은 재밌지만 시도때도 없이 으헝헝 거리는 문체가 너무 가볍고 유치한 면이 있어 몰입에 방해가 되더라구요. 소설 속 남자주인공인 이제키엘의 존재가 작품 전반에 걸쳐 비중이 낮고 흐릿하게 그려진데다, 루카스 또한 후반부 외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않아 전체적인 내용은 클로드와 아타나시아 부녀 관계가 조금씩 진전을 보이며 딸바보, 아빠바보로 변화돼 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니트나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족같아서 지루하게 여겨지더라구요.
영혼을 갈아넣은 것처럼 너무나 아름답게 그려진 클로드와 아타나시아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이 들어서 눈이 즐거운데다, 캐릭터의 심경의 변화나 내적 갈등, 상황의 극적 전환 등이 섬세한 연출로 극대화 돼 심장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소설로 완결까지 다 보긴했지만 글로 묘사된 몇몇 극적인 장면들을 스푼 작가님의 그림체로 보고 싶어서 다음 연재분을 기다리는 게 힘들 정도로 조바심이 납니다. 현실세계에서 고아로 외롭게 지냈던 주인공이 소설속에서 다시 태어나 비록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아버지라는 존재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모습이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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