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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 이야기/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 - 배두나

by R&X 2018.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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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의 시공간에 걸친 6개 스토리의 윤회와 카르마 /결말이 포함된 영화리뷰입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워쇼스키 남매의 명성과 '향수' 등을 감독한 톰 티크베어 감독의 연출, 그리고 톰 행크스, 휴 그랜트, 할리베리, 수잔 서랜든 등 쟁쟁한 캐스팅, 게다가 한국 여배우인 배두나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라는 흥행 요소를 띠고 관객들에게 야심차게 선보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는 흥행 참패라는 기록을 남겼고, 우리 나라에서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혹평과 함께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으로 의견이 갈리게 되었죠. 

1849년 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중병에 걸리게 된 어윙의 이야기,1936년 클라우드 아틀라스 육중주를 작곡한 비운의 천재 작곡가이자 동성애자인 로버트 프로비셔 이야기, 1974년 핵발전소에 얽힌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여기자 레이의 이야기, 2012년 사채업자에게 쫓기다 요양원에 갇히게 된 출판업자 캐번디시 이야기, 2144년 미래 국제 도시 네오 서울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에 맞선 클론 손미 이야기, 2346년 문명이 파괴된 미래의 지구, 어느 섬에서 잔학한 코나 족 악당들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자크리의 이야기 등 500년의 시공간에 걸쳐 6개의 서로 다른 스토리가 중구난방 교차하는 형식으로 다소 복잡하게 장면이 전개됩니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 영화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걸까, 정신없이 흘러가는 장면들 속에서 연결점을 찾으려고 애써 보았죠.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봤기 때문에 사실 한 배우가 여러 명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도 모르고 봤거든요. 그래서 '왜 자꾸 톰 행크스가 시대를 거슬러 계속 다른 사람으로 등장하는 거지?''어, 저 사람 아까 그 배우아냐?'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것처럼 남자, 여자 역할을 번갈아 연기하며 분장한 배우들을 발굴(?)하느라 스토리는 뒷전일 정도였습니다.
 
인간의 삶이 한 생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윤회를 반복한다면 선하게 산 보상은 무엇이고, 악하게 산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치 천국과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심판도 없이 그저 한 생이 끝난 후 다시 아무렇지 않게 새로운 생이 주어지는 것이라면 굳이 착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윤회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자신의 선택이 만들어 가는 현생의 삶이 자신에게 천국도, 지옥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업보, 카르마라는 것이죠. 자신이 맺어가는 인과는 현생뿐 아니라 후생의 어느 순간에도 응보로 나타나기도 하죠. 1849년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 어윙은 흑인 노예의 인권에 눈을 뜨게 되면서 자유를 위한 노예해방의 길을 걷기로 선택합니다. 그가 쓴 항해 일지는 훗날(1936년) 불운한 작곡가 로버트 프로비셔에게 영향을 미쳐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가 탄생합니다.
시대가 받아들여주지 않는 가치, 동성애, 신분제도 이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한 로버트 프로비셔의 편지는 그의 연인이었던 식스미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1974년 여기자 레이는 식스미스로부터 건네받은 자료를 통해 핵발전소의 음모를 저지하고자 나서게 되죠.
 
2012년 출판업자 캐번디시는 사채업자를 피하려다 형의 술수로 요양원에 갇히게 됩니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는 치매, 정신병자 노인들을 수용하는 시설, 가족들의 욕심에 의해 강제로 격리된 삶을 살았던 노인들은 자신의 마지막 삶을 포기하지 않고 억압에 굴하지 않겠다며 탈출을 감행합니다. 이 캐번디시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고, 2144년 클론인 손미는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이 처한 사회적 현실을 자각하게 되면서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대한 눈을 뜨게 됩니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도구로 취급받아온 클론이었던 손미는 반군의 도움을 받아 전 인류에게 자각의 메세지를 남깁니다. 손미는 마치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죽음과 희생을 통해 인류의 구원자가 됩니다.
 
2346년 문명이 파괴된 시대, 손미는 신으로 숭배받고 있었습니다. 자크리는 처음엔 소심한 겁쟁이라 조카와 매제의 죽음을 외면하고 말았지만, 메로님을 만나고 손미 신의 메시지를 통해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 결과 가족을 살리고, 그의 남은 인생은 사랑과 존경 속에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죠. 500년이라는 시공간에 걸쳐 끝없이 윤회와 업보를 반복하는 인간 군상들의 삶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은 작고 미미하지만, 올바른 선택이 미치는 영향력은 마치 작은 물방울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듯 혁신과 변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휴고 위빙은 이 영화에서 계속 악인으로 나오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에서 비겁자로 살 수도 있고, 악인으로 살 수도 있고, 위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된다면 이 삶을 천국으로 만들지, 지옥으로 만들지도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죠.

인간으로서 자유와 평등, 존엄과 용기를 잃지 않고 그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작지만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그런 마음과 행동들이 모여 이 세상을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제도 좋고 소재와 영상미, 캐스팅 모두 좋았지만, 사실 서양인들이 윤회와 업보를 다루기엔 뭔가 어설픔과 부족함이 엿보이는 영화였습니다.

네오 서울의 미래 배경도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 동양은 역시 일본과 중국의 이미지가 더 짙다는 느낌도 받았고, 배우들의 분장도 어떤 것은 좋았지만 어떤 것은 너무 어설퍼서 극의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죠. 만일 이 영화를 오시이 마모루나 다른 동양 감독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이제 막 윤회사상에 대해 눈 뜬 서양인이 우리는 이미 1000년에 걸쳐 익숙해온 주제에 대해 애써 설명하려는 영화였다는데 일부 공감합니다. 그래도 윤회를 통한 인연의 반복과 업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 영화라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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