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하고 따스하고 감동적인 생존과 모험 이야기 결말이 포함된 영화 리뷰입니다.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85회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포함 4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로 황홀하고 아름답게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파이'의 가족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위해 배에 올랐지만, 뜻하지 않게 폭풍우를 만나 배가 침몰하면서 16살 파이만 구명보트에 의지해 겨우 목숨을 부지하게 됩니다.
구명 보트에는 얼룩말과 하이에나, 오랑우탄이 함께 올라타게 되고, 하이에나에 의해 한 마리 한 마리씩 겨우 부지했던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하이에나가 마지막으로 파이를 공격하려던 그 때, 보트 안에 숨어 있던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튀어나와 하이에나를 처단합니다. 이제 보트 안에서 호랑이와 단 둘이 남게 된 파이는 27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며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됩니다. 불의의 사고로 홀로 살아남아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톰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미 접해본 바가 있죠. 캐스트 어웨이에서의 생존은 그야말로 리얼한 투쟁이라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치열한 생존이라기 보다는 10대 소년의 세상을 향한 모험과 성장이야기처럼 동화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신드바드의 모험이나 정글 짐, 타잔 같은 동화 이야기를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처럼 바다에서 호랑이와 단 둘이 표류하며 갖은 고생을 하는 파이의 이야기는 용기와 희망, 감동으로 가득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리처드 파커의 털 한가닥 한가닥, 보트를 향해 날아드는 날치 떼의 모습, 바다에서 아름답게 유영하던 해파리 떼, 그리고 보트 위로 힘차게 솟구치던 고래의 모습까지 이 모든 게 CG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고 유쾌한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탄성을 내지르게 만들죠.
불행 중 다행으로 보트 안에는 생존을 위한 지침서와 식수, 통조림, 비스킷 등이 갖춰져 있어서 표류를 시작한 초기에는 자칫 방심하면 호랑이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긴장감만 빼면 파이도 그럭저럭 살만 해 보입니다. 하지만 호랑이의 발톱을 피해 배 안에 있던 모든 비상물품을 바다 위로 옮겨 놓았던 것이 실수. 갑자기 고래가 보트 위로 솟구치는 바람에 그 귀중한 물품들이 모두 바다로 흩어지게 되고, 파이는 빈털털이가 됩니다. 채식주의자인 파이였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물고기를 잡아 연명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되자 파이는 그동안 고수해오던 가치관이나 습관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삶을 위한 선택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배에 오르기 전에는 수많은 신을 섬기며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원대한 자연과 절대적인 운명 앞에서 파이는 비로소 진실된 신의 모습과 구원을 좇게 됩니다. 좀더 편해지려면 호랑이가 없어지는 게 좋았을 테지만, 파이는 굶주림에 못이겨 바다에 뛰어든 리처드 파커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를 다시 배 위에 태웁니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톰 행크스가 배구공을 '윌슨'이라고 이름 짓고 말벗으로 삼아 의지한 것처럼, 파이에게도 생존을 위해 함께 할 동반자가 필요했던 것이죠.
리처드 파커는 파이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는 위안과 깨달음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둘의 물리적 거리는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지만, 표류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둘 사이의 유대는 점차 강해져 갑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된 채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또 한차례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었을 때 파이는 지쳐 쓰러진 리처드 파커를 품에 안고 살아남은 것에 대한 안도, 앞으로 다가올 절망에 대한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정에 복받쳐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사납고 무서운 맹수도 그 때만큼은 파이의 품에 조용히 안겨 교감했습니다. 표류하다 어느 낯선 신비한 섬으로 흘러들어갔을 때 일순 그곳은 파이와 리처드 파커에겐 낙원처럼 보였습니다. 손만 뻗으면 잡힐 듯 수만 마리의 미어캣들이 섬을 가득 메웠고, 맑고 깨끗한 물 속에는 물고기가 가득했고, 쉴만한 나무그늘도 있었죠. 하지만 그 섬은 생명의 섬이 아니라 죽음의 섬이었습니다. 마치 시신이 누워있기라도 한 것 같은 형상을 한 그 음습한 섬은 낮에는 천국 같았지만, 밤에는 죽음이 찾아오는 곳이었습니다. 리처드 파커는 위험을 감지하고 해가 떨어지면 일찌감치 배로 돌아가 파이에게 경각심을 던져 주었죠. 파이는 현재의 안락함에 안주하지 않고 리처드 파커와 함께 다시 절망의 길이 될 지도 모를 바다로 나가죠.
그리고 마침내 그 둘은 육지에 다다랐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희망의 땅을 밟게 되었지만 파이에겐 또 한 번의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오랜 표류 기간 동안 의지했던 리처드 파커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정글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죠. 마치 이제까지 겪은 환상의 세계는 끝이 났음을 냉정하게 알리듯,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파이는 오열하고 맙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살아남은 파이가 어른이 된 후, 슬럼프에 빠져 탈출로를 찾고 있던 어느 작가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파이는 지금까지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꿈과 희망과 용기가 있는 동화같은 이야기 말고 누구나 납득할만한 리얼한(?)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이야기 중 어느 것이 더 마음에 드느냐고 묻습니다. 작가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리처드 파커와의 이야기를 선택합니다.
이안 감독이 스크린에 구현한 황홀하고 신비롭고 유쾌한 장면들은 죽음조차도 마치 음악처럼, 예술처럼 아름답게 전해주었고, 위태위태한 현실도 꿈결처럼 아름다운 여정인 것처럼 보여주었습니다. 아마 우리도 고통스럽고 끔찍했을 파이의 진짜 현실보다는 파이가 선택한 환상적이고 희망이 있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게 되겠지요. 지나간 과거의 고통이 뒤돌아보면 아름답게 미화되는 건 아마도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생존방식일지 모릅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는 믿을 수 없는 환상과 모험, 판타지같은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는 뜻일까요. 고통과 절망을 유쾌한 상상과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면 인생의 풍파를 견딜 용기가 솟아오를 수 있을테니까요.
'영화&드라마 이야기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잭 더 자이언트 킬러 -재크와 콩나무 유쾌하게 비틀기 (0) | 2018.05.14 |
---|---|
마블 영화 순서-인피니트 스톤의 역사 (0) | 2018.05.08 |
클라우드 아틀라스 - 배두나 (0) | 2018.05.04 |
[영화]미하일 바르시니코프의 "백야" (0) | 2018.04.30 |
영화 커뮤터-리암니슨이 또 한 번 해냈다! (0) | 2018.04.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