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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이야기/애니

[애니]귀를 기울이면

by R&X 2018.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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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포함된 리뷰입니다. <귀를 기울이면>은 1995년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각본을, 콘도 요시후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혼나 요코(시즈쿠 목소리), 타카하시 잇세이(세이지 목소리) 등이 출연합니다. 중학교 3학년,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청소년기 시절, 첫사랑의 풋풋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 설레임, 열정 등이 차분하게 담겨 있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잔잔한 애니입니다. <이웃집 토토로>나 <마녀키키> <천공의 성 라퓨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하울의 성>등이 상상력이 풍부하고 마법의 세계와 액션이 가미된 판타지로 좀더 역동적이라면, <귀를 기울이면>은 <추억은 방울방울>이나 <코쿠리코 언덕>처럼 서정적이고 일상적인 잔잔한 이야기가 중심이 됩니다. 지브리 작품은 모두 몇 번을 다시 봐도 재미있지만, 특히 <귀를 기울이면>은 볼 때마다 그리운 친구를 만나듯 반가운 설렘이 있습니다.

올드팝 컨트리로드가 울려퍼지며 시작되는 오프닝. 주인공 시즈쿠는 평소 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중학교 3학년생입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학위를 따기 위해 늦은 공부를 시작한 어머니, 이제 막 독립한 대학생 언니를 가족으로 두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 읽는 게 시즈쿠의 일상인데, 최근 책을 빌릴 때마다 신경 쓰이는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항상 자기보다 먼저 책을 빌려서 도서관 카드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아마사와 세이지’라는 사람에게 흥미가 생긴 것이죠. 친구를 만나러 학교에 간 시즈쿠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깜빡 잊고 벤치에 놓고 갑니다. 황급히 다시 돌아와 보니 어느 남학생이 그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시즈쿠가 ‘컨트리로드’ 팝송의 가사를 일본어로 개사한 것과  ‘콘크리트 로드’ 글이 들어 있었는데, 낯선 남자아이가 그걸 보고 “이건 그만두는 게 좋아”라고 말하자 열이 받습니다. 

그 날 이후 아버지가 놓고 간 도시락을 전해주러 집을 나선 시즈쿠는 전철에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가 타 있는 걸 보고 호기심에 그 고양이를 따라 갑니다. 낯선 골목골목을 돌아서 다다른 곳은 신기한 골동품들이 잔뜩 진열된 가게였습니다. 특히 시즈쿠의 시선을 잡은 것은 멋진 정장 차림을 한 근사한 눈을 가진 고양이 신사였습니다. 마침 가게에선 주인 할아버지가 특이하게 생긴 시계를 고치고 있었는데, 요정과 난쟁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담긴 괘종시계 였습니다. 시계가 12시를 알리자 정신이 번쩍 든 시즈쿠는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뜹니다. 하지만 곧 아버지의 도시락을 가게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난감해 하던 찰나, 지난 번 그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도시락통을 전해주러 옵니다. “도시락이 크네~”라고 놀리는 남학생의 말에 또 한 번 열이 오르지만, 남학생이 “츠키시마 시즈쿠”라고 자신의 이름을 대자 깜짝 놀라고 맙니다. “어떻게…?””글쎄, 어떻게 일까?” 수수께기 같은 남학생의 자전거 뒤에는 아까 그 고양이가 능청스럽게 앉아 있었습니다.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 우연한 만남들이 이어지고 주인공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랑의 향기가 솔솔 피어오릅니다. 주변에서 친한 친구들 사이에 사랑이 어긋나 아파하거나, 어색해지는 관계들이 생겨나자 당황하게 된 시즈쿠는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이런 변화들이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마음을 달래려 찾아간 곳은 할아버지의 골동품 가게 앞.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습니다. 가게 앞에 주저 앉아 있는 시즈쿠 옆으로 뚱뚱이 고양이가 와서 무심한 듯 곁에 있어 줍니다. 그 때 또 한 번 그 남학생과 조우합니다. 할아버지 손자라는 그 소년은 고양이 인형을 보고 싶어하는 시즈쿠를 가게 안으로 들여보내 줍니다. 

고양이 인형은 ‘훔베르트 폰 기킹엔’ 남작으로 바론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고양이 인형은 나중에 <고양이의 보은>편에 주인공 하루를 돕는 역할로 또 한 번 등장합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아랫층으로 내려간 시즈쿠는 바이올린을 제작하고 있는 소년의 모습에 감탄을 합니다. 한 번만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하자 소년은 그럼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소년의 멋드러진 연주가 시작되고, 시즈쿠는 ‘컨트리로드’를 직접 개사한 가사로 노래를 부릅니다. 이 애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이 장면이라고 할 정도로 소년의 바이올린 연주, 시즈쿠의 청순하고 맑은 목소리, 그리고 마침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와 친구분들의 합주가 어우러지는 장면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명장면 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즈쿠는 이 소년이 바로 그토록 궁금해 했던 도서관 카드 속의 그 이름, ‘아마사와 세이지’라는 걸 알고 놀라고 맙니다. 

세이지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바이올린 제작을 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시즈쿠는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는 자신과 달리 야무지게 미래를 생각하며 한 발 한 발 앞서가고 있는 세이지를 보며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함을 갖게 됩니다. 세이지의 조건부 유학이 결정되고, 둘은 서로를 격려하며 이별을 맞이합니다. 시즈쿠는 세이지네 할아버지의 응원과 도움으로 자신을 테스트하기 위해 고양이 인형 ‘바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로 합니다. 시즈쿠의 상상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며 사랑의 시련과 온갖 모험을 겪게 되는 바론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시즈쿠는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지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소설은 완성되고 세이지네 할아버지에게 첫번째 독자로서 소설을 읽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거칠지만 원석과도 같은 빛을 발하는 시즈쿠를 마음껏 칭찬하고 격려하는 할아버지의 응원 덕분에 시즈쿠는 자신이 걸어갈 미래에 대해 부푼 희망을 안게 됩니다. 

그 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잠이 깬 시즈쿠는 창 밖에 세이지가 서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랍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아직 어린 나이지만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으로 애니는 끝이 납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는 컨트리로드 음악이 마음을 간지럽히며 긴 여운을 남겨줍니다. 막연한 불안 속에서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도무지 알 수 없던 그 질풍과도 같던 시절, 꿈을 찾고, 사랑할 대상을 만나고, 열정을 쏟을 무언가를 찾아나가는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작품 내내 가슴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던 애니였습니다. 

2020/01/29 - 2020년 2월 1일 토요일-넷플릭스 지브리 애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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