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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이야기/애니

[애니]목소리의 형태(2016)

by R&X 2018.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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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흐름상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소리의 형태>는 <타마코 마켓>을 연출한 야마다 나오코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빛을 사용한 감각적인 비주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야마다 나오코는 세심한 감정표현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림체는 귀엽고 이쁘지만 이 애니가 전달하는 주제와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 주변인들의 무관심, 죄책감, 회피, 관계의 단절, 분노, 절망, 화해와 용서의 과정들이 가슴 답답하고 아프게 전달됩니다.

초등학생인 이시다 쇼야네 반에 귀가 들리지 않는 니시미야 쇼코가 전학을 오게 됩니다. 말이 어눌하고 노트에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쇼코에게 반 아이들은 처음엔 상냥하게 대하는 듯 하지만 점점 불편한 대화 방식과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 만큼 서서히 거리감이 생기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반 아이들에게 수화를 가르쳐 쇼코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 하지만, 이에 거부감을 갖는 학생도 생기고 은근히 쇼코를 따돌리는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시다는 쇼코에게 관심이 생겨 짓궂은 장난을 쳐보지만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쇼코가 거북하기만 합니다. 이시다의 장난은 점점 도를 넘어가고 급기야 쇼코의 보청기를 집어던지는 등 괴롭힘의 강도가 거세집니다. 쇼코 엄마가 학교에 이를 항의하게 되면서 이시다가 왕따 주동자로 지목되고, 함께 쇼코를 따돌리고 조롱하는데 동조했던 친구들을 끌어들이려 하자 순식간에 왕따 가해자에서 집단따돌림의 대상이 되어버립니다.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가게 되고, 이시다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내내 왕따 가해자라는 딱지가 붙은 채 외톨이가 됩니다.  

고등학생이 된 이시다는 초등학생 때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없고 항상 주눅들어 있습니다. 오랜 죄책감과 자기 혐오에 빠져 있는 이시다는 알바를 하면서 예전에 보청기 값으로 저축을 몽땅 털었던 어머니에게 드릴 돈을 마련한 뒤 생을 마감하려고 할 정도로 허무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니시미야 쇼코에게 어릴 때 전하지 못했던 버려진 필담 노트를 전해주려고 찾아간 이시다는 예전과 변함없이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는 쇼코를 보고 당황하게 됩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서로 상처를 주고 받고 불안하며 겁에 질린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위태위태한 언니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동생 유즈루나, 잘못 앞에서 나서지 못하고 항상 주저주저 외면했던 사하라나, 왕따를 방관하면서 자신만 착한 척 하던 카와이나, 니시미야를 직접적으로 싫어하던 우에노나, 이시다가 왕따 주동자로 몰렸을 때 친구에게 등을 돌리고 이시다를 괴롭혔던 시마다 일행 등등... 

왕따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된 이시다는 쇼코에 대한 감정이 죄책감인지, 자기 기만인지 알지 못한 채 자꾸만 쇼코 주위를 맴돕니다.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이시다의 눈에 주변 인물들은 모두 얼굴에 X자가 그려져 있어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친구를 사귈 자격이 있는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도 되는건지 문득문득 불안해지고, 누군가 과거 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화장실로 뛰어들어가야 할 만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이시다의 모습이 무섭도록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그려집니다.  

무엇보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불행을 몰고 오는 자기 자신을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해온 감정을 생글거리는 웃음 뒤에 감추고 툭 하면 '미안합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던 니시미야 쇼코는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합니다. '니시미야만 없었으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그래서 나는 니시미야를 좋아할 수 없다'며 소리치는 우에노의 절규 또한 지극히 솔직하면서도 지독하게 자기 중심적인 감정의 단면입니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목소리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 용기, 수용, 이해가 따라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할 때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 왕따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이 끝내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과오를 바로잡고 상처를 극복하려면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끝까지 노력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기에, 진심이 받아들여지든 받아들여지지 않든 살아있는 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시다와 쇼코는 과거를 받아들였고, 용서했고, 용서받았고, 새로운 내일을 발견했습니다. 아직은 불안하고 두려운 미래지만 조금 더 용기를 내볼 수 있는 희망찬 미래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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