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애니 이야기/만화

[만화]기생수 - 히토시 이와아키

by R&X 2018. 5. 6.
반응형

결말이 포함된 만화리뷰입니다. 패러사이트가 인간에게 고하는 경종의 의미  '지구에 있는 인간의 반을 죽이면 자연의 파괴를 막을 수 있을까' '지구에 있는 인간이 1/100로 줄어들면, 그들이 뿜어내는 독(폐수, 매연 등)이 1/100로 줄어들 수 있을까...' 기생수의 첫 시작은 이런 의미심장한 어구로 출발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테니스 공만한 밤톨같은 원형 물질에서 꼬물꼬물 뱀 같기도 하고 촉수동물 같기도 한 생명체가 기어나온다. 그 외계 생물이 인간의 귀를 통해, 코를 통해 혹은 살을 파고들면서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가 뇌를 장악해 버린다. 그 순간 인간의 형상을 한 완전한 변종, 기생생물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 기생수들은 인간의 뇌를 장악한 순간 본능적으로 하나의 명령을 받게 된다. "너희가 장악한 그 종을 잡아먹어라"

즉 기생수들이 인간에 기생하게 되면 인간을 먹어야 하고, 개에 기생하게 되면 개만을 잡아 먹게 된다. 하지만 뇌를 장악하지 않으면 인간과 기생수는 서로의 종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공생 관계에 놓이게 된다.
주인공 신이치는 불행 중 다행으로 기생수가 오른쪽 손바닥을 통해 기어들어가는 순간, 오른쪽 팔을 묶어 더이상 그 생물이 몸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기생수는 신이치의 오른팔에 기생하면서 공생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오른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 기생수는 신이치의 몸 속으로 들어갔을 때 뇌를 장악하지 못하고 성장체가 되고 말았기 때문에 다른 숙주(다른 인간의 몸)로 옮겨가더라도 오른손으로만 옮겨갈 수 있을 뿐 두 번 다시 인간의 뇌를 장악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이 기생수들의 특징은 몸이 자유자재로 늘어났다 줄어들 수 있는 신축성이 있으며, 날카로운 흉기로 변해 인간, 혹은 자신에게 적의를 품은 다른 기생수들을 갈갈이 찢어 죽일 수 있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기생수들이 인간을 잡아먹거나 공격할 때의 모양은 '토탈 리콜'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뒤집어 쓴 가짜 얼굴이 층층으로 분리되면서 벌어지던 장면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듯.. 그리고 인간의 몸이 갑자기 날카로운 흉기로 변하는 장면은 터미네이터 2에서 존의 양육을 맡았던 여자의 손이 갑자기 칼로 변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오른쪽'이는 신이치의 오른 손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에 다섯 손가락 모양을 하고 있으며 달팽이 촉수처럼 흐물떡 거리는 두 개의 눈이 있고, 손바닥에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촉수는 얼마든지 여기저기서 뻗어나오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팔과 다리가 있다고 봐야 한다.. 숙주로 삼은 인간 혹은 동물이 죽으면 기생수들도 죽기 때문에 빨리 다른 숙주로 이동을 하든가 아니면 죽지 않기 위해 숙주로 삼은 인간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오른쪽'이는 신이치의 피 속에서 양분을 빨며 살기 때문에 인간을 잡아먹지는 않지만, 자신의 종족인 다른 기생수들이 신이치를 죽이려고 할 때마다 동족끼리 피 튀기는 혈전을 벌이며 신이치의 목숨을 지키게 된다. 하지만 신이치를 지키는 오른쪽이의 입장은 친구로서의 의리나 정 따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른쪽이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 뿐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고, 무심하고 냉정한 행동일지언정 오른쪽이에게는 그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타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일 뿐 도덕적 혹은 윤리적 가치의 판단이나 인정머리 따위는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기생수들에게 있어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지 자신들의 식량에 불과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인간과 공존하며 사는 방법을 몰랐던 기생수들은 그저 자신들의 본능대로 무작정 인간을 살육하고 먹어치우기 시작했지만, 먹다 남은 인간의 시체 조각들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자 기생수들은 자신들의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생수들 중 두뇌가 우수한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타미야 요코'는 기생수들의 미래적 가능성과 존속을 위해 인간집단을 연구하면서 스스로 다른 기생수와 결합하여 인간의 아이를 임신하는 실험체로 자신의 몸을 이용한다. 기생수들이 인간의 뇌를 차지하고 있지만 머리 아래는 인간의 신체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고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타미야 요코는 의식적으로 인간을 잡아먹지 않고 인간이 먹는 식량을 섭취함으로써 인간만이 기생수들의 유일한 식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비록 천적의 관계에 놓여 있기는 해도 기생수들도 인간과 공존하며 살 수 있는 다른 종의 생물일 뿐,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무조건 배척해야 하는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기생수들이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비교했을 때는 공격력이 월등히 우세하지만, 인간들이 무리를 이루어 조직력을 발휘하게 되면 그 힘이 몇 배나 커진다는 사실을 간파했기에 기생수들에게도 서로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조직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요코는 인간의 오만함에 반발한 또 다른 인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시장으로 선출되게 함으로써 기생수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 하지만, 결국 군대에 의해 패러사이트 소탕 작전이 이루어지면서 기생수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되고 본거지마저 잃게 된다. 게다가 요코는 동족인 기생수들에게조차 공격을 받게 되자 기생수들 사이에는 조직력과 협동심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요코는 패러사이트(기생생물)의 박멸을 위해 포위망을 좁혀온 경찰들에 의해 총알 세례를 받게 된다. 인간들의 공격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코는 자신이 낳은 인간의 아이를 보호하며 그 총탄을 온몸으로 맞고 목숨을 잃는다. 요코는 오로지 '생존'하는 것만이 목적이었던 기생수인데 왜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인간의 아이를 보호한 것일까. 기생수들은 종족번식을 하지 않고 단지 숙주를 바꿈으로 인해(즉, 자신이 기생한 인간으로부터 다른 인간의 육체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함) 그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이지만, 인간은 개체와 개체의 만남을 통해 생명이 잉태되고 출생과 성장, 사망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종족을 보존해 나가는 종이라는 것에 대해 일종의 경외감과 신비감을 가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기생수의 미래와 존속에 대해 누구보다도 관심이 깊었던 요코에게 인간이라는 종의 생명 존속 법칙은 기생수인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진리였으며, 부러움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약한 존재로서의 종일 뿐이야. 너무 미워하지마"죽기 직전 신이치에게 요코가 남긴 한 마디가 그런 그녀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라고 본다. 히토시 이와아키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어찌 보면 기생수인 오른쪽이가 신이치에게 해준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을 돼지나 소와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보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인간 또한 자신들을 잡아먹는 괴물로 여겨질 뿐이다. 기생수들이 인간을 장악한 순간 '이 종을 잡아먹어라'라는 명령을 받은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자연의 생물들은 자신이 절대자로부터 명령받은 바에 의해 자연법칙을 지키며 약육강식 속에서 먹고 먹히는 관계가 되고 있지만, 인간은 거의 모든 종을 잡아 먹으며 예외의 존재로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이야기의 막바지로 갈수록 기생수인 오른쪽이 또한 신이치의 육체에 기생하면서 공생하는 동안 기생수로서의 본질적인 성향이 변질되어 적어도 신이치를 '친구'로서 대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되는 걸 볼 수 있다.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 존속하는 '종'이든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생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이치를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지구상에는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주는 대상이 반드시 존재한다. 이른 바 '천적'의 관계에 놓이게 되면 죽느냐 죽이느냐의 치열한 싸움이 생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으며 항상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구상에서 공존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구 위에 군림하면서 각종 공해와 오염물질, 혹은 전쟁과 파괴를 통해 지구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인간들은 다른 종들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위협적인 대상이 되고 있는지... 무수히 많은 종을 퍼뜨리며 지구의 생태계를 위협해온 인간들 앞에 '패러사이트'라는 천적이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면, 그제서야 인간들은 마치 기생수인 요코가 그랬듯이 다른 종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인가.

기생수는 2014.10.09. ~ 2015.03.26.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방영되었고, 2015년 소메타니 쇼타 주연의 실사영화로도 개봉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