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화&애니 이야기/만화

[만화]충사-우루시바라 유키

by R&X 2018. 6. 12.
반응형

"무릇 불길하고 꺼림직한 것, 하등하고 기괴하여 흔한 동식물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여겨지는 것, 예로부터 사람들은 그 이형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품어왔고, 언젠가부터 이들을 '벌레(무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충사의 첫 장면은 이런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벌레는 우리가 생각하는 곤충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대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벌레에 씌이거나, 특이한 체질을 가진 이들의 눈에는 벌레가 보이기도 합니다. 벌레 또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 저들 방식대로 생존해 나갈 뿐이지만, 인간이 벌레에게 휘말리게 되면 때로는 가혹한 운명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벌레를 다루고 연구하며, 치료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충사"라고 하는데, 하얀 머리에 외눈을 하고 있고, 늘 입에 벌레 쫓는 연기가 나는 담배를 물고 있는 주인공 "깅코" 또한 직업이 충사입니다. 

어릴 적 벌레에게 한 쪽 눈을 먹혀 어둠을 품고 다니는 깅코는 벌레가 꼬이는 체질이라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늘 전국방방곡곡을 떠돌며 벌레가 나타나는 곳을 찾아갑니다. 험한 산을 넘고 위험한 지역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목숨을 내놓고 다닌다고 봐야 겠지요. 깅코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개 벌레에 의해 어딘가 문제가 생긴 사람들입니다. 벌레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상현상에 대한 원인도 모른 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약을 지어 벌레를 쫓아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벌레의 영향력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거나, 혹은 벌레와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알려주는 게 최선일 때가 많습니다. 가슴 아픈 사연도 있고, 자업자득인 사람도 있고, 벌레 때문에 생명을 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작품에서는 구체적인 시대상을 설명하지는 않고 있지만 서양문물이 막 들어오고 변화가 일어나는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접어든 일본의 모습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배경과 시대의 무게가 주는 세상살이의 어려움이 묘하게 어우러져 한 편 한 편마다 가슴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감동과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신라는 세상에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해 홀로 외롭게 산 속에 숨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우연히 벌레들의 향연에 말려들게 된 신라의 할머니가 반쪽만 벌레가 되어 영원히 보이지 않는 존재로 신라 옆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깅코의 도움으로 벌레들의 생명수인 광주라는 물을 먹고 모습이 보이게 된 "어린 소녀" 모습의 할머니가 평생 외롭게 살아야 했을 신라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이 첫 이야기였습니다. 그 외에도 눈 덮인 산 속에 사는 어린아이의 머리에 도깨비처럼 뿔이 돋아나 이를 해결하는 이야기, 살아있는 늪 벌레 안에서 산을 이동하며 바다로 흘러가게 된 소녀 이야기, 움직이는 무지개를 잡으려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떠돌이의 이야기, 벌레에게 기억을 먹히며 점점 옛일을 잊어가는 어머니와 사는 뱃사공 소년 이야기 등등 신기하고 기묘하며 가슴 아픈 사람들의 사연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슬픈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벌레를 이용해 맛있는 술을 빚어내게 된 술 제조자 이야기, 벼루에 깃든 벌레 때문에 생업을 포기했다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벼루제작자 이야기 등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깅코의 눈이 벌레에게 먹히게 된 사연, 충사들의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적으며 몸 안에 봉인된 벌레를 조금씩 덜어내야 하는 운명을 가진 탄유의 이야기, 교통수단이나 연락수단이 따로 없던 시절 충사들의 연락망이 되어주는 누에를 키우고 관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 벌레와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흥미를 돋습니다.

충사는 만화책으로 봐도 재미있지만, 시즌 1,2와 특별편 등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원작보다 더 잘 그린 그림과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아름다운 배경들,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음악과 성우진들의 활약 덕분에 평생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작품으로 탄생했습니다. 특히 깅코의 목소리(성우 : 나카노 유우토)가 캐릭터랑 너무 잘 어울려서 몰입도가 높습니다. 충사인 깅코는 무조건 벌레를 배척하거나 억압하지 않습니다. 벌레들 또한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기에 무조건 사람 편을 드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들도 세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공존해 가야 한다는 것을 설파하기에 사람들에 대해서도 벌레에 대해서도 항상 따뜻한 시선이 머물러 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벌레들은 진짜 존재하는 것처럼 설정이 세세해서 공감도가 높습니다. 벌레의 모양, 특징, 약점과 아직 모르는 미지의 부분까지도 디테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충사 원작은 아쉽게도 10권의 본편과 1권의 특별편 총 11권으로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어딘가에서 벌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깅코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옴니버스 방식의 전개였기에,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충사들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