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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이야기/만화

[만화]유리가면-스즈에 미우치

by R&X 2018.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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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지마 마야히메카와 아유미의 [홍천녀] 연기 대결과 보라빛 장미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 절절하게 파고들던 유리가면은 어린 시절 추억의 한 편에 자리잡고 있던 걸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즈에 미우치의 '유리가면'은 캐릭터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름끼치도록 강렬한 개성과, 신분상승 로맨스가 엿보이는 스토리 전개구조, 연극과 연예계라는 특수한 무대 설정이 어우러져 삼박자가 착착 맞는 연출력을 자랑합니다. '유리가면'이 나왔던 70년대는 일본에서도 가난하고 평범한 인물이 역경을 헤치고 사회적인 부와 성공을 성취하는 스토리가 무척이나 매력적인 내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공부도 별로인데다가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없어보이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마야는 홀어머니와 함께 우동집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동 배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수 투성이의 마야에게서 남다른 점을 찾으라면, 바로 'TV' 앞에만 서면 모든 것을 제쳐둔 채 드라마 속으로 빠져든다는 점이었지요. 동네 꼬마들에게 어제 본 드라마 내용을 얘기해주는 것을 생활의 유일한 기쁨으로 삼고 살아가는 마야를 보면서 엄마는 언제나 한숨을 내쉬며 잔소리를 해댑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연극 티켓을 타내기 위해 우동집 딸과 내기를 했던 마야는 도저히 혼자서는 해내기 불가능해 보이는 우동배달을 마친 뒤 티켓을 요구하지만, 주인집 딸은 기분 나쁘다면서 연극 티켓을 강물 속에 던져버립니다. 티켓이 강물에 떨어지는 걸 본 마야는 앞뒤 가리지 않고 물 속에 뛰어들었고, 간신히 구출 된 뒤에도 연극 티켓을 손에서 놓지 않고 "연극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면서 좋아합니다. 



연극이라면 본능적으로 피가 끓어오르는 마야는 곁에서 자기를 눈여겨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어느 집으로 우동 배달을 가게 됩니다. 우동을 가지고 간 집에서 마야는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마야에게 우동 배달을 시킨 것은 바로 왕년의 유명한 여배우였지만 사고로 인해 한 쪽 얼굴을 망쳐버리고 만 츠키카케 치구사였습니다. 치구사는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에게 드라마를 재연해주고 있던 마야를 우연히 보게 된 후 그녀의 재능을 한 눈에 꿰뚫어 보았던 것이죠. 마야에게 크리스마스 이브 날 티켓을 얻어 보았던 연극을 해보라고 권유합니다. 마침 그 자리에는 '홍천녀' 상연권을 둘러싸고 치구사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던 재벌 2세 마스미 하야미가 와있었습니다. 서툰 연기와 발음으로 연극을 하고 있는 마야를 보면서 치구사를 동정하던 하야미는 마야가 단 한 번 본 연극 대사를 한마디도 틀리지 않고 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치구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마야와 하야미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평범하고 남의 눈에도 잘 띄지 않는 마야가 치구사라는 연극계 거물을 만나 연극인으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는 처절하리만치 냉혹하고 엄격한 훈련이 따르게 됩니다. 연극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연극계의 유망주인 아유미와도 대등한 연기를 펼치게 되는 마야의 놀라운 변신은 이 작품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꿈과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더군다나 겉으로는 언제나 원수처럼 으르렁 거리지만 마야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그녀를 보호하며 보라빛 장미의 사람으로서 마야를 지켜주는 하야미의 존재는 여성 팬들의 가슴 속에 두근거리는 낭만을 심어주게 됩니다. 

수많은 연극 무대에 올라서는 마야의 천부적인 재능과,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단련시켜온 아유미의 자기훈련을 통한 성숙된 연기의 대결은 '유리가면'을 지탱해주는 굵은 뼈대가 되어줍니다. 때문에 그 두사람의 연기하는 모습이 조금만 어색하게 표현되었어도 유리가면은 말 그대로 깨어지기 쉬운 유리처럼 그 작품의 완성도가 산산히 깨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헬렌켈러를 연기하는 마야, 존재하지 않는 새를 쫓는 소녀를 연기하는 아유미의 판토마임, 살아있는 사람으로서는 연기하기 어려운 인형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마야의 섬뜩하리만치 완벽한 연기, 그리고 늑대에게 양육되어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는 야생의 모습을 하고 있던 소녀가 한 교사의 교육으로 인해 얌전한 소녀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마야의 연기는 하나하나가 완벽한 무대예술을 보는 듯 한 착각 속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했습니다.

치구사의 홍천녀 상연권을 노리며 마야가 속한 극단의 앞길을 가로막는 존재로 인식되어 버린 하야미에게 마야는 적의를 품게 되지만, 연극에 대한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 평범하지만 맑고 순수한 소녀인 마야를 바라보는 하야미의 시선은 남다른 것이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업가로서의 하야미는 마야에게는 늘 앙숙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지만, 보라빛 장미 속에 실어 보내는 그의 사랑과 격려는 마야의 역경을 붙들어주는 커다란 손길이 되어줍니다. 연극을 한답시고 가출한 딸 마야의 연극을 보러 왔다가 폐결핵으로 숨을 거두게 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하야미를 오해한 마야는 더더욱 하야미에 대해 적개심을 품게 되지만, 결국 하야미가 보라빛 장미의 사람이었고, 홍천녀에 얽힌 출생의 비밀까지 밝혀지면서 마야와 하야미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야는 아유미와 함께 홍천녀의 주연을 따내기 위한 시험에 들어가게 되고, 팽팽한 대결 국면에 놓이게 된 두 소녀는 자신들이 가진 재능과 노력을 통해 홍천녀의 주연권을 따내기 위해 구슬진 땀을 흘리게 됩니다.

오사카 태생으로 고교 2학년때 '산과 달과 아기너구리'로 데뷔한 작가 스즈에 미우치는 76년 격주간 순정잡지 '하나토유메'에 '유리 가면' 연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미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줄거리를 완성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연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22편까지 읽다 말았던 것 같은데 벌써 50권이 나왔다고 하는군요. 일관된 스토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은근한 사랑을 받고 있는 유리가면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새삼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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