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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 이야기/만화

[만화]강경옥의 펜탈+샌달(1999년 발행)

by R&X 2018.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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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포함된 리뷰입니다. '별빛속에’의 작가 강경옥의 또 다른 작품 ‘펜탈+샌달’이 문득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펜탈성의 왕자인 에펠과 그의 친구인 훼릴은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이상한 분배능력을 나눠가진 특이한 친구사이입니다. 에펠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만나면 그 여성의 이상형으로 외모가 바뀌게 되고, 동시에 훼릴은 그 여성이 싫어하는 점만 나눠 갖게 됩니다. 에펠은 항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에펠 또한 상대방의 좋은 점만 바라보게 되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은 훼릴을 보면 자신이 싫어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기 때문에 진저리를 칩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에 대해 회의적이고 기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훼릴은 삐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마음이 따뜻하고 책임감이 강한 남자입니다. 우연한 계기로 지구에서 외계로 오게 된 소영은 훼릴의 닫혀진 마음을 열어주는 특이한 인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영 또한 자신의 싫은 점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훼릴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어딘가 음울하고 기분 나쁘기만 한 줄 알았던 훼릴이 늘 자신의 경호를 염려하며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다시 보게 되죠.  훼릴에 대해 점차 호감을 가지게 된 소영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때로는 자신의 싫은 점을 알게 되는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야"라고 말이죠.

훼릴은 소영의 의외의 반응에 조금씩 당황하게 되고, 그러면서 점차 소영에게 마음이 기울어 갑니다. 샌달성 왕가의 음모로 위험에 빠진 소영을 구하기 위해 괴물로 변한 훼릴은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소영에게 들키고 나자 거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소영을 외면하고 맙니다. 지구로 돌아갈 시기가 된 소영은 훼릴을 찾아가 자신의 심경을 고백합니다. "지구로 가면 내 모든 기억을 지울테니까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 같아. 난 너를 좋아해. 너는 믿지 않겠지만. 동정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모든 사람들이 널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아 줘. 에펠도, 너의 사촌 동생도 그리고 나도 모두 널 좋아하고 있어. 어차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널 좋아할 순 없는 거잖아.”

소영의 말에 넋이 나간 듯 할 말을 잃어버린 훼릴의 그 멍한 표정이 또렷하게 떠오르는군요. 며칠 뒤 소영이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날, 훼릴은 소영에게 자신도 소영을 좋아한다고 고백합니다. 지구로 돌아온 소영은 예상대로 훼릴과 있었던 모든 일을 잊었지만, 왕의 허락을 받고 자유로이 지구로 출입할 수 있게 된 훼릴을 만나자 곧 다시 모든 기억이 떠오르게 됩니다. 훼릴은 소영에게 “네가 원한다면 나는 지구로 계속 올 수 있다”라고 말하고, 소영은 “당연하지!’라고 말하고 훼릴에게 안기며 만화는 끝이 납니다. 전형적인 90년대 청춘로맨스 판타지 만화이지만, 강경옥 특유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캐릭터의 표정과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애달픈 마음들이 가슴 찡하게 만드는 만화입니다.  만화책에서 본 훼릴은 '별빛속에'에서의 레디온과 비슷한 검은 머리와 차가운 인상을 가진 남자입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요소만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현실에선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소영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성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약한 점, 싫은 부분까지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훼릴을 그렇게까지 사랑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 또한 모른다는 뜻이 되겠지요.

훼릴은 이제껏 살면서 부모를 제외한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은 평생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마음속으로부터 사랑을 부정해 왔고, 마음 문을 굳게 닫고 그 누구에게도 그 문을 열지 않았었죠. 사랑을 받지 못해서 사랑을 할 수 없는 건지, 사랑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랑을 모르는 훼릴은 언제나 상처받는 존재였고, 늘 그림자를 안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친구인 에펠왕자의 부탁조차 왕자로서 명령하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겠다고 할 만큼 그는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그는 소영으로부터 긍정적인 자신의 모습에 대해 듣게 되었고, 자신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 훼릴은 잠시 충격에 휩싸여 할 말을 잊어 버리고 맙니다. 소영은 그런 훼릴을 보며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죠. 훼릴의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감정의 파도를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던 것입니다.

훼릴은 사람들이 자신을 끔찍스럽게 생각하던 반응들에 대한 나쁜 기억들 속에서 스스로를 좀먹어 오던 컴플렉스를 극복했고, 자유롭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다시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구로 소영을 찾아온 훼릴은 "네가 원한다면 네 곁에 머물러 주겠다"는 단서를 달만큼 사랑에 조심스러운 남자였지만, 그의 품으로 안겨드는 소영을 마음껏 포옹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1999년에 발행된 책이라 이제 절판되었겠지만, 강경옥 만화는 특유의 따스함과 밝음이 있어서 늘 좋았죠. 애장판으로 다시 나와줬으면 싶네요. 그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한 장 한 장 소중하게 다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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